흙의 의식: 여성 작가 6인전
큐레이터: 장미영 (Miyoung von Platen)
스위스, 인도, 핀란드, 미국, 영국 & 프랑스에서 활약중인 6명의 여성 작가들은 각기 다른 기법과 주제로 자신의 의식을 표현한다. 이번 단체전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은 사진, 유화, 수채화, 아크릴, 자수 등의 다양한 기법으로 미묘한 정신세계를 표출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의 숲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 “흙의 의식”은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 그것은 단순한 AYU SPACE의 한옥 갤러리 “흙관 Prithvi”을 상징하는 이름 뿐만 아니라 작품 외양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자연과의 관계”, 예컨대 작품속에 감추어진 꿈, 그리움, 두려움, 아름다움, 신비스러움 등의 의미와 질서를 각기 다른 기법으로 자신만의 “흙” 같은 세계관을 제시한다.
한옥 실내 전시장에 어울리도록 병풍 같이 설치된 파티션을 통하여 대형 전시나 아트 페어에 지친 우리를 위로라도 하듯이 6작품의 감상을 한잔의 커피와 함께 조용히 할 수 있다. 마치 지친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처럼 그림속의 숨겨진 비밀과 의미를 감상하면서 작가들의 작품에 묘사된 현대미술의 시각적인 복합성을 파헤쳐본다. 기존의 갤러리 공간에서 벗어나 건축과 자연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갖춘 AYU SPACE에서 이들의 작품들이 재해석되기를 바라면서 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1. Youngin Hong, I Bought Flowers 2004-2012, 60cm x 60cm
2019년 한국 국립현대 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자였던 홍영인 작가는 영국 바스 미술대학의 전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활약중인 작가이다. 공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글, 드로잉, 바느질, 퍼포먼스 등으로 표현하는 홍영인 작가는 “인간은 국가, 남녀, 민족, 나이, 동물 등 다른 것과 경계를 긋는다. 그리고 배타주의가 강하다”에 대한 공동체와 공존의 가치에 대하여 중요한 질문을 던지면서 작업을 시작한다. 현대의 환원 주의적인 사고와 수직적인 사회체계를 비판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동물과 인간, 식물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의 영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역들이 상실되는 것을 지적하고 평등한 관계의 회복을 염원한다. 홍작가는 자신이 직접 여행했던 나라에서 구매했던 꽃들과 각 나라의 불평등한 환율의 가치를 이 작품 속 하얀 캔버스에 검정색 실로 바느질하여 그녀의 세계화와 공존에 대한 경험을 평면 자수로 표현하였다. 이 작업이 현재도 지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공존에 대한 경험을 지속적으로 평면자수로 표현하려고 한다.
2. Rashmi Khurana, My Experience with Truth, 2015, 65cm x 65cm
인도에서 활약중인 Rashmi Khurana는 자신이 본 경험적 전통체제, 생각 그리고 자연을 추상화 기법으로 표현한다. 여자와 남자의 개념 체계가 분명한 인도에서 그녀는 불교와 힌두교의 세계관과 만물에 대한 “기”, “영” 그리고 “음양”에 대한 얽힘과 허무한 물질의 비 영구성에 대한 질문을 붓과 함께 터치한다. 그녀의 강렬한 의식과 꿈은 그림이라는 매체와 새로운 관계로 시작하여 생동적 숨결과 힘을 담아서 그려낸다. 이러한 에너지의 복합적인 상호관계를 색상, 기억, 꿈으로 되살려 그녀의 내재된 우주관으로 캔버스에 마띠에르가 두꺼운 물감으로 담아낸다. 그녀의 현실에 대한 경험과 기억은 마치 아직 밝혀지지 않은 잔잔한 노스텔지아를 자아내고 있는 듯하다.
3. Myungdo Kim, Wisteria 2018: 87cm x 66cm
미국에서 활약중인 김명도 작가는 전통 동양화 기법을 독학으로 공부하여 작업하는 작가이다. 미국에서의 오랜 생활로 하여금 전통적인 한국화의 공허와 여백에 대한 철학적, 정신적인 발견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를 연결하는 자신이 찾은 미학의 표현 방법이다. 김명도 작가는 아주 현대적인 한국 여성 중 한명으로 자신이 선택한 식물이나 풍경의 자연 자체에 내재된 응어리와 본질에 대한 인식을 되풀이 음미하면서 아주 섬세한 붓으로 종이위를 누비듯이 그려 나간다. 또한 작가의 작품은 한국의 전통 건축과 문화의 주된 유교 사상인 “천인합일”을 통하여 인간과 우주, 자연과의 조화를 보라색 꽃은 양으로 초록색 꽃잎과 가지는 음으로 이해하면서 그러한 요소를 자신의 회화속에 조화롭게 구성시킨 것이다. 이 작품 속 비스테리아라는 꽃을 통하여 김명도 작가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그녀의 새로운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4. Tiina Mielonen, Pool, 2012: 57 cm x 47 cm
핀란드 헬싱키에서 활약중인 Tiina Mielonen은 강렬하면서도 유희적인 유화를 아클릭 표면에 그려낸다. 그림 엽서 속의 한장면을 밑그림이 없는 아클릭 판에 아주 과감하면서 자신감 있는 유화 물감의 붓터치로 불필요한 디테일은 배제하고 핵심적인 분위기 연출로 그려낸다. 그녀의 그림은 모든 것을 형태에 근거하여 설명하려는 서양 미술의 관점으로 보이기 보다는 동양 회화에 깃든 공허함, 부재하는 존재, 단순성과 불완전성을 병행하는 듯하다. 이 그림은 수영장 그림 엽서를 축약적이면서 비가식적인 세계의 공간으로 재현한 후 처음부터 그림 엽서속에 존재하지 않는 내포적 의미를 담고 있는 사람을 그려 넣으면서 새로운 시너지를 불어넣는다. 그녀의 그림은 공기의 순환을 느낄 만큼 가벼운 붓터치 (Airy Impression)기법을 사용하지만 물, 하늘, 나무 등 자연의 심오한 공간 묘사 뿐만 아니라 순수하면서 추상적인 세계의 재현을 유토피아적으로 표현한다.
5. Leta Peer, To Inhabit a Place #5, 2005, 143cm x 103cm
스위스 출신의 작가 Leta Peer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특수망이 존재하는 사진 작업을 한다. 그녀가 캔버스에 그리는 유화는 사진 작업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Peer는 그녀가 직접 그린 회화를 시작으로 하나의 예술작품을 사진으로 완성한다. 그녀의 알프스 설산을 배경으로 한 유화 작품은 복원중인 스위스의 로코코 궁전 Schasezlerplais에 재 배치되어 그녀의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재탄생 된다. 회화와 사진의 기존의 영역을 넘 나 들면서 자연과 문화적 사이에서 마치 숨겨졌던 흥미로운 대화를 이끌어내는 듯하다. Peer가 선택하는 사진 작업의 빈 공간은 항상 조용하면서 평화로우며, 그녀의 야생적인 겨울 풍경화는 알수없는 향수와 멜랑콜리를 자아낸다.
6. Jiyeon Sung, Tricoteuse (woman knitting), 2009, 60cm x 70cm
박건희 문화재단의 14회 다음작가상을 수상한 성지연 작가는 프랑스에서 활약중인 작가이다. 그녀의 사진은 오브제와 인물과의 관계를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회화적인 느낌으로 묘사하여 함축적인 구조와 궁금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양화가 램브란트나 페르메이르에게 영감을 받은 깊이 있는 명암 표현으로 복합적인 주제를 압도적인 감성적 분위기로 표현한다. 그녀의 사진 속 인물은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오브제를 응시하는 시선으로 제각각 다양하지만, 이들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태도는 항상 일관성이 있다. 성지연 작가는 자신이 구성한 오브제와 인물의 역할과 관계를 관객들이 재빠르게 해석하기 보다는 이미지 속의 애매 모호한 코드나 장치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수수께끼처럼 풀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